월돈재 브랜드 스토리

越暾齋 - 따스한 햇볕을 넘어

일본어 입력을 보고난 단상

3년 전,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아내가 영문 자판으로 일본어를 입력하는 걸 봤다. "와타시와..."를 쓰려면 "w-a-t-a-s-i-h-a..." 이렇게. 로마자 입력 방식. 알고는 있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이상했다. '일본인들은 불편하겠구나. 자기 문자를 입력하는데 영문을 빌려야하다니.'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IT 쪽에서 친구들에게 얘기했더니 반응은 비슷했다. "괜찮은데 우리 회사랑은 방향이 달라서..." "시장이 너무 작아보이는데…" 2년 전 ChatGPT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코딩을 시도해봤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마음을 접었다.

예상치 못한 재회

2025년 1학기, 학교에 중국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번역 도구로 ChatGPT 유료 버전을 쓰기 시작했다. 번역기로만 쓰기 아까워서 다시 코딩을 시켜봤다. 놀랍게도 이번엔 작동했다. 2년 사이 AI가 이렇게 발전한 건가?

하지만 일본어를 모르니 한달여를 헤맸다. 결국 방향을 바꿨다. 내가 아는 것부터 하자. 서예를 하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이 아이폰에서 한자를 입력하는 것이었다. 한字키보드를 먼저 만들었다. 3개월이 걸렸다. ChatGPT, Claude, Cursor, Windsurf, Claude Code... 도구를 갈아타며 배웠다. 50대 후반, 영화전공 교수가 개발자가 되었다.

그 경험으로 8월부터 시작해 4개월여만에 한本키보드를 완성했다. 학교 강의와 작은 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일 사이사이, 쉬엄쉬엄.

26개의 키, 그 위의 다양성

개발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세상에 26개 키보드 위에서 자신의 모국어를 직접 입력할 수 있는 언어가 몇 개나 될까? 영어와 로마자 언어들은 된다. 하지만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 대부분은 영문을 거치거나 별도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

영어가 인류 공용어가 되어가는 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언어가 영문 입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왜 모든 사람이 영문으로 일본어를 입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영문 입력이 비효율적이라거나, 없애야한다는게 아니다. 다만 선택지가 하나만 있어야 할까?

수요가 적더라도 누군가는 필요로 하지 않을까? 다양성은 선택지의 수로 증명된다. 그게 지역 문화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문화를 공유하는 방식

한국과 일본은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많은 공통점도 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고 언어 구조도 비슷하다.

한本키보드에서 일본어 입력 시 종성을 뺀 건 의도한 것이다. 일본어에는 받침이 없다. 한국어 화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받침이 일본인에게는 발음할 수 없는 소리다. 자신의 키보드로 상대의 언어를 입력하되, 상대의 언어 체계를 존중하는 것. 그게 문화 교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越暾齋의 실천

2013년 보스턴 근처 월든 호수를 다녀왔다. 2021년 소양호변에서 달빛을 보며 떠올렸던 단상에 서예 선생님이신 하석 박원규선생님으로부터 越㬿齋라는 당호를 받았다. 2025년 회사를 시작하며 越暾齋로 바꿨다. 낭만적인 달빛보다 현실적으로 따스한 햇볕이 회사이름으론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소로우는 세상이 정해놓은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살았다. 나도 나름의 방식으로 실천해보려 한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것. 불편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23년간 해온 실험영화제도 같은 맥락이다. 상업적이지 않고, 관객도 많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영화제. 주류가 아니지만 의미 있는 것을 만드는 일. 한本키보드도 그렇다.

50대 후반의 시작

친구들이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에 바이브 코딩을 시작했다. 실제 코딩은 한줄도 짜질 못하지만 로직을 만들고, 하나하나 엮어가는 것은 한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과 비슷했다. 누구나 아이디어와 용기, 관심만 있으면 전혀 새로운 분야도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천천히 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 그리고 계속하는 것.

한本키보드

세상에 없던 선택지를 만듭니다.

越暾齋